건축가 김수근이 1977년에 지은 '공간사랑'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곳은 그가 문화의 터전을 일구기 위한 장소로써 마련한 곳이었으며 많은 예인들이 즐겨 찾곤 했다. 사물놀이의 탄생도 이곳에서 비롯된다.
늠름한 모습의 청년들이 스스로 '남사당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첫 사물놀이 공연을 가진 것은 1978년 2월 28일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열렸던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에서였다. 이 무대에서 김용배(쇠), 김덕수(장고),
최태현(북), 이종대(징) 등 젊은 타악 국악인 4명은 '웃다리풍물[경기.충청]가락'을 발표했고 그날 공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들이 보여준 진기하고도 신명나는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갖지 않은 채 가진 이날의 공연은 사물놀이 탄생의 서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첫 공연 2개월 후 같은 장소에서 사물놀이의 성립을 알리는 제2회 연주('영남풍물 12차 36가락')가 있었으며, 이날 공연이 끝났을 때 민속학자 심우성 씨 등 지기들은 이들의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하며 '사물(四物)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어서 1979년 5월에 1978년의 작업을 종합적으로 발표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이는 사물놀이의 희망찬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사물놀이'는 자신들을 그냥 사물놀이라고 부르지만, 사물놀이단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금, 밖의 사람들은 그들을 다른 단체와 구별하기 위해 '김덕수패 사물놀이'라고 흔히 부른다.
창단멤버였던 김용배, 김덕수, 최태현, 이종대는 곧바로 김덕수, 김용배, 최종실, 최종석으로 새로운 팀을 구성했다가 1979년에 최종석이 이광수로 교체되었다.
 
이 무렵은 그들이 눈부신 활동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한 때였는데, 1983년 들어 꽹과리를 치던 김용배가 음악적인 견해차이를 이유로 탈퇴, 국립국악원 사물놀이를 창단했으나 1986년 복잡한 추측을 남긴채 자살하고 말았다. 사물놀이는 김용배 대신 강민석을 영입하여 이광수(쇠), 김덕수(장고), 최종실(북), 강민석(징)으로 자리바꿈한 채 이어오다가 1990년대 들어 이광수와 최종실이 떠나고 지금은 김덕수와 강민석이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을 창단(1993)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는 모두 자유와 無를 사랑하던 유랑집단 남사당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들은 경기.충청지방의 웃다리풍물을 했는데 최종실은 경남지역에서 영남풍물을 한 탓에 가장 늦게, 국악고등학교 시절 서울에 올라와 모두와 만났고 그후로도 교류를 계속했다. 떠돌다가 서로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것이 옛 남사당예인들의 운명이었지만 훗날 만나 10년 이상을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변화 탓일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이들에게 종래와 같은 형태의 야외에서 하는 난장이나 걸립은 더 이상 지속키 어렵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고, 새로운 형태의 실내공연을 위한 레퍼토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김용배와 김덕수는 새로운 남사당 예술의 창조와 사명에 대해 오랫동안 얘기했고, 어려서부터 외국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우리 전통음악의 타악기가 외국의 타악기와 비교할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세계적 보편성과 자부심에 공감하고 사물만으로 구성된 연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먼저 어린시절을 보냈던 걸립패의 가락을 정리하기 위해 선배예인들이나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풍물.무속음악 등의 가락들을 보다 완벽한 형태로 다듬고 연주했다.
 
 
이들은 전통 타악의 가락을 크게 3가지 범주로 구분했다. 먼저 민중들이 크게 즐기고 놀았던 풍물굿을 지역별로 습득하고 체계화하는데 힘썼다.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의 웃다리가락, 호남지역의 우도가락, 경상도 일대의 삼천포 12차 등을 주력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다음으로 이들이 혼신의 힘을 쏟았던 영역은 무속음악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들이 힘썼던 무속음악은 경기도 도당굿의 무속음악이다. 경기도 도당굿의 무속음악은 복잡하고 화려하면서도 담백하여 무속음악의 전통성을 대표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풍물굿의 가락이 대단히 충동적이고 다채로운 흥취를 자아내는 것이라면, 경기도 도당굿이 무속가락은 매우 서정적이면서 뭉클한 서정성을 자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들이 주력한 영역은 삼도설장고이다. 설장고는 장고의 으뜸을 뜻하기도 하고 판굿의 구정놀이에서 장고가락의 기교를 한층 더 자랑하는 것인데, 장고 가락의 음양성에 착안하고 삼도 지역의 장고가락을 재편성하면서도 순도 높은 예술 창작품을 가공하기에 이른다. 네 명의 치배들이 내뿜는 예술적 열기과 탁월한 감각이 전통적인 삼도의 설장고 가락과 만나서 유감없는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기에 이른 것이다.
 
 
사물놀이의 연주는 남사당을 통해 이어져온 전통음악의 신명나고 건강한 부분을 온전하게 계승하여 '국악은 따분하도록 늘어지는 음악'이라는 많은 이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국악은 가장 체질에 맞고 신명나는 음악'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국내외 많은 음악가들과 협연했으며, 해외공연 횟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신들의 팬클럽을 각국에 거느리고 있으며, 해외에서 디스크 테이프가 제작.판매되고 있다. 미국 뉴욕 필하머니의 수석타악기 주자 '모리스 랜지'의 신문 평처럼, 사물놀이는 세계 곳곳에서 불과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모든 청중들을 그들의 소리 속으로 함몰시키고 있다.
 
사물놀이가 연주하는 곡목들은 무속과 풍물놀이 중에서 사물과 그 기능만을 떼어내 새로운 놀이 혹은 연주형태로 정리해온 것인데, 5-6세 때부터 남사당의 어린 잽이와 무동으로 자라온 이들 사물놀이들의 몸에 밴 기량과 감각, 그리고 그후 교육을 통해 습득된 정리된 음악적 지식 등은 이들이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이 필요하다'는 자각에 이르렀을 때 충분한 자양이 되었다. 사물놀이가 이제까지 가장 많이 연주한 곡목은
'비나리', '삼도설장고가락', '삼도풍물가락', '판굿' 등이다. 고사나 굿 등 무속적 의식을 무당이 아닌 걸립패나 잽이(악사)들이 치르는 '비나리'는 천지개벽, 산천경계내력, 살풀이, 액풀이, 축원덕담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다(천개우주 하날이요...소원성취 발원이라...). 비나리가 끝나면 '앉음반' 형식의 '삼도설장고가락'과 '삼도풍물가락'이 펼쳐진다. '앉음반'은 궃은 날이나 방안에서 흥이 올랐을 때 연주하는 방식인데, 청중들의 시각적인 흥을 청각적으로 옮겨 소리를 재발견하도록 하여 판굿이나 비나리보다 훨씬 음악적 예술성이 요구된다. 앉음반 형식이 모두 끝났을 때 시각적인 흥을 판굿에 담아 마무리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불교사찰에는 범종(梵鐘), 운판(雲版), 목어(木魚), 법고(法鼓) 등 의식에 쓰이는 사물이 있으며 민간에는 쇠(꽹과리), 징, 장고, 북 등의 사물이 있는데, 목어, 법고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며, 범종과 운판은 금속으로 만든다. 또한 장고와 북은 가죽으로 만들며, 쇠와 징은 금속으로 만든다.
  양(+) 음(-)
금속
가죽 장고
 
가죽으로 만든 악기는 땅의 소리를, 쇠로 만든 악기는 하늘의 소리를 뜻하는데, 이 4개의 악기를 인간이 연주하면 이들 악기로부터 진동이 서로 어우러지고 화합하여 '소리의 공간'을 이루게 된다. 이것은 '천지인(天地人)'의 3재사상(三材思想)을 받들어온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소리의 유산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으로 많은 민속음악이 이 사물의 소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악기의 역할을 자세히 살펴보면 쇠는 시간을 소리로 다져내고 북은 이를 몇 개의 그룹으로 갈라내며, 장고는 그 사이사이를 채워 나간다. 징은 몇 개의 소리 무더기를 크게 휘감아 하나의 소리 공간을 이루게 해준다.
사물은 무속음악과 풍물굿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악기들이었으나, 양자 모두가 오랜 세월 시각적인 예술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였기 때문에 그 장단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의 깊게 관찰해오지 않았었다. 따라서 시각적인 요소를 배제시킨 사물의 순수한 연주를 통한 소리의 세계는 누구에게나 새로운 체험일 수밖에 없으며 그 후 세계무대를 통해 우리장단의 우수성을 확연히 인정받게 되었다.
 
사물놀이를 구성하는 질서는 크게 '긴장.이완의 원리'와 '음.양 조화의 원리'로 풀 수 있다. 사물놀이가 연주하는 대부분의 곡목은 혼합박자→복합박자→단순박자로 전개되는 점진적 가속의 틀, 혹은 완만한 속도에서 급속한 장단으로 이행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에다 사물 악기들의 음양적 대립성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굴러가며 합쳐지는 과정에서 보이는 질서는 관객의 어깨를 저절로 들썩이게 하거나 박수나 추임새를 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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